네이버 평점 4.7점, 메가박스 평점 3점대. 보기 드문 평점을 기록하며 극장에서 사라진 영화 한 편이 있다.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인류멸망보고서-멸망의 3가지 징후’라는 영화이다. 인류멸망보고서는 세 가지 단편영화를 모아 각각 인류 멸망을 다루는 낯선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가 단지 낯설기 때문인가? 아니면 재미가 없어서? 이 영화는 단지 미숙하고 재미없어서 망했다고 하기에는 더 재미없는 영화들보다 더 망했다. 정말 이 영화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이유를 생각해본다. 이 영화는 밑도 끝도 없이 직설적이다. 이 영화의 세 단편 ‘멋진 신세계’, ‘천상의 피조물’, ‘해피버스데이’는 각각 인류가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고 소리 높여 외침으로써 멸망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인 관객에게 불편함을 일으킨다.

멋진 신세계는 분리수거 되지 않은 쓰레기로 만들어진 사료를 먹고 자란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온 대한민국이 좀비천국이 되는데도 정치판에서는 북한의 세균전, 정치 음모론이라며 치고 박고 싸운다. 그 와중에 토론 프로그램에서 ‘하나의당’ 의원이 보여주는 코메디는 이 영화의 직설풍자의 압권이다.

천상의 피조물은 헐리우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이 인간을 능가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로봇은 조금 더 흥미롭다. 이 로봇은 스스로 절에서 수행을 통해 스스로 도를 깨우치고 승려들에게 부처로 추앙받는다. 반면 로봇회사에서는 이 로봇을 오작동을 일으킨 로봇으로 간주하며 승려들과 대립한다. 이 대립 과정에서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로봇의 오작동이 인류의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로봇회사의 말에 한 승려가 이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항상 국가가 안보를 핑계 삼아 민중을 억압하는 논리’라며 반박한다. 어떤 나라라고 신문에 쓸 수는 없지만 어떤 나라의 정권과 참 닮은꼴이지 않은가.

세 번째 단편 해피버스데이에서는 혜성 충돌로 인한 지구멸망 직전 상황을 그려낸다. 혼란의 와중 홈쇼핑에서는 한 회사가 방공호를 판매하고 있다. 어차피 멸망하면 끝이니 조잡하게 막 만들어 판매해 마지막 돈을 끌어 모으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이 뻔한 이 회사의 이름은 ‘SAMSUNG’을 패러디한 ‘SANGSAENG’. 삼성의 패러디가 상생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만으로도 왜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는지 설명이 된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넷 등 매체에서의 이 영화의 평점이 낮은 이유를 설명한 것 같다. 인류멸망보고서가 너무나 반사회적이고 체제비판적인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이 성향들 때문에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들인 것이 문제인 것이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고르는 요즘 세상에서는 꽤 큰 타격이다. 내가 높으신 분들이 압력을 넣어 평점을 조작했다고 말하는 데에는 보기 드문 평점, 영화의 내용 외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근거도 없는 음모론이며 근거도 없이 영화 탓이 아닌 사회 탓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요즘 세상, 무슨 근거가 필요하던가? 내가 제일 근거 있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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