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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유학 시절 이겨내고 ‘신나게’ 연구하는 교수■세상을 품에 안은 전남대인 42. UCLA 언어학과 교수 전선아 동문(영어교육·78)
나보배 기자  |  nbb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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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02  11: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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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동안 공부하던 의미·통사론 대신 음성학 선택…“좋아하는 것 찾아라”

   
   

교수가 아무리 ‘연구’하는 직업이지만 공부한지 2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음성학 연구에 푹 빠진 이가 있다. UCLA 교수가 된지는 벌써 19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UCLA 학생들과 호흡하고 있는 우리 대학 전선아 동문(영어교육·78)이다. 그에게 미국 유학길에 올라 대학 전공과 다른 분야로 성공하기까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친구이자 스승이던 아버지
전 동문의 원래 꿈은 ‘판사’였다. 전 동문의 아버지는 본인이 원했던 법조계의 길을 가지 못하자 전 동문이 판사가 되길 바랐고, 전 동문 역시 아버지의 말을 따라 ‘서울대 법대’를 진학해 판사가 될 것을 꿈꿨다.

그러나 전 동문이 중학교 3학년 때 ‘고교 평준화’가 이뤄졌다. 그가 꿈꾸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실망이 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한다.

“학교에 남아있는 경우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희망을 품으며 전 동문은 대입 준비 학원에 다니며 5개월 만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수석’으로 통과한다. 그 후 수능 공부를 하며 전 동문은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한다.

고민 끝에 그는 판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판사 대신 무엇을 꿈꾸는 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당시 취직도 잘 되고 기성회비도 면제됐던 사범대를 가기로 결심했다. “오랫동안 내가 판사가 되리라 믿었기에 아버지가 충격을 받으실까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긍정적이고 쉽게 그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전 동문은 우리 대학 사범대학 인문계열에 입학한다.

입학 1년 뒤 전 동문은 영어교육과로 진학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영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전 동문이 좋아한 과목은 수학이었고 영어 과목을 제일 싫어했다. 영어는 무조건 외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어에 조금씩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었다. 대학입학이 결정된 후 겨울 방학동안 전 동문의 아버지는 “좋아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다. 영어를 싫어하니까 영어를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며 영어회화학원을 권유했다. 이때부터 그는 영어에 조금씩 흥미를 갖게 된다.

이렇게 늘 전 동문의 선택을 지지해주던 그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시절을 혼자 보내던 전 동문에게 말동무가 되어준 친구였고, 항상 옆에서 격려해주던 스승이었고, 흔들리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인생을 바꿔놓은 ‘언어학개론’
영어에 조금 흥미는 붙었지만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영어를 계속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던 전 동문은 인생을 바꿔놓은 수업을 만나게 된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이환묵 교수의 ‘언어학 개론’ 수업이었다.

언어학 세부 분야인 통사론 강의였는데, 영어 문장 구조를 나무 가지처럼 표현함으로써 영어 문장이 문법적으로 ‘왜’맞고 틀린지를 수학처럼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수업이었다.

전 동문은 “영어 안에서 수학을 맛보게 해준 사막의 신기루 같은 과목”이었던 언어학 개론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또한 이 교수를 보며 “언어학이 어떠하기에 교수님은 강의하면서 저렇게 행복해하실까”하는 생각을 하며 언어학에 관련된 모든 강의를 수강한다. 이후 더 깊은 언어학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며 자연스럽게 교수를 꿈꾸게 된다.

남녀차별 넘기 위에 오른 유학길
1984년 어학연구소(현재 언어교육원) 조교로 있으면서 여자 선배들이 남자 선배들보다 교수 자리를 잡지 못하는 걸 보게 됐다. 당시 영문과와 영어교육과를 합쳐 여자 교수는 단 1명 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 동문은 “남자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 되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당시 광주에는 유학 준비 학원이 없었고 인터넷도 없어 유학 준비 하는데 힘이 들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미국 캔사스 대학 언어학과에 재직 중이던 오준규 교수가 1년 동안 우리 대학 대학원에서 강의하게 된다. 오 교수의 강의를 청강하며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에 대한 경험을 하며 유학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

오 교수는 전 동문에게 미국에서 상위 10위 안에 드는 언어학 대학원을 적어주며 “경제적인 부담이 있더라도 교육의 질이 높은 상위 대학에 가는 것이 더 좋다”고 충고했다. 당장의 돈 때문에 5년 동안 더 깊이 누릴 수 있는 교육의 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이 말을 깊이 새겼던 전 동문은 현재 그에게 상담을 하는 제자들에게 똑같은 충고를 해준다.

진짜 좋아하는 과목을 찾다
우리 대학에서 의미론과 통사론을 공부했고, 의미론 교수에게 큰 기대를 품고 오하이오대 주립대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당연히 통사·의미론 분야를 전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음성학과 음운론을 공부하며 새로운 흥미를 찾는다.

연구자 본인이나 주변의 생각에 따라 어떤 문장이 문법적으로 가능한 지를 연구하는 통사·의미론과 달리 음성학은 소리를 녹음한 뒤 컴퓨터 분석을 통해 소리의 패턴을 찾는 분야였다. 이런 음성학은 수학을 좋아하던 전 동문의 적성과 딱 맞았다.

“하지만 통사·의미론을 6년 넘게 공부해왔는데 2년도 안된 기간 동안 배운 음성·음운론을 6년 뒤에도 여전히 좋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또한 음성·음운론 분야로 교수가 되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쉽게 음성·음운론을 택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미래의 직업 보다 현재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음성·음운론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성학을 선택한 것에 단 한 번의 후회 없이 음성학을 ‘좋아하며’, ‘신나게’ 공부하고 있다.

“열정과 꿈을 가져라”
현재는 누구보다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지만 전 동문 역시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지나가는 비행기만 봐도 한국에 가고 싶어 눈물이 났고, 전화 값이 비싸 부모님께 전화도 하지 못했다.”

2학년 때는 잠 오는 것을 쫓기 위해 추운 새벽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공부하다가 ‘내이(內耳)감염’에 걸리기도 했다. 귀 속의 달팽이관이 감염되었기 때문에 눈을 움직이기만 해도 어지럽고 토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했다. 눈을 움직이기만 해도 토를 하니 침대에 누워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책을 움직이며 공부했고 다행히 그해 종합시험을 통과해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됐다. “남편이 옆에서 정성껏 보살펴 준 덕분”이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낸 전 동문은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열정과 꿈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잘 하지만 좋아하는 열정이 없으면 오래 할 수 없고, 꿈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능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선아 동문은 ▲ 1978년 전남대 영어교육과 입학 ▲ 1984년 전남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석사 취득 ▲ 1986년 9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 입학 ▲ 1988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언어학 석사 취득 ▲ 1993년 9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언어학 박사 취득 ▲1993년 7월 미국 UCLA 대학 언어학과 조교수 임용 ▲1999년 7월 미국 UCLA 대학 언어학과 부교수 임용 ▲ 2004년 7월~현재 미국 UCLA 대학 언어학과 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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