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규칙, 규범, 법 안에서 ‘자유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까.

방금 무언가 무척 지루하거나 식상함을 느끼지 않았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발간된 어느 책에서 방금 발췌한 것 같은 문장을 보는 듯 했을 테다. 인생과 삶을 논할 때면 매번 이렇다. 새로움과 즐거움이 없다. 우리들 일상이 그리도 재미가 없는 것일 뿐이었나. 매 시간, 매 분, 심지어 매 초마다 고민해본다. 희(喜). 이것 없이 우리 삶을 논할 수 있을까. 무언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뜨겁게 용솟음치게 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싶진 않은가?

필자는 그런 기질을 타고 났나 보다. 남들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다. 정해진 틀 안에 몸담을 때면 여지없이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머릿속에 상기된다. 장벽 혹은 감옥처럼 느껴지는 그 거대한 우물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미련한 개구리처럼 산다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자에게는 크나큰 시련, 아니 죽음과도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청개구리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우물 밖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행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한 치의 머뭇거림이 없다. 한 예로 자신을 보헤미안이라고 불러달라는 한 지인은 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 시험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웅성웅성 대며 돌아다니는 것만 보면 점심 먹었던 게 소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너무 답답하기 때문이라는 것. 모두가 해야 할 때, 자신도 해야 한다면 그 순간 그 해야 할 것 본연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의 태도는 완고하다. 반대로 시험 기간이 아닐 때는 여유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한다. 다른 사람들이 쉬고 놀 때 공부하는 것이 더 스릴이 넘치지 않느냐며, 모두가 한길을 가는 똑같은 사회에서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찾는 청개구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토론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창의적인 생각이 뿌리박힌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 때 당시는 우습고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의견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사실 이미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범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에디슨,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등 성공하기 이전에는 주변 사람들마저 그들의 기발한 생각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은 누가 바꾸었는가. 일반적인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잘못된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트렌드 자체도 아이디어와 개성이 넘치는, 새로운 개념의 벤처(venture)가 세상의 이목을 끌고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특별하다기보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것으로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청개구리인 셈이다. 하지만 우선 우리 정서에 청개구리 하면 좋지 않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청개구리를 매몰시키고 우물 안 개구리 혹은 그저 덩치만 커진 우둔한 황소개구리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자유롭다고 생각하기 전에 본인이 정말 자유로운지 주변을 둘러봐야할 필요가 있다. ‘자유에 대한 이유 있는 반항’이 필요한 때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청개구리가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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