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버릇이 있어서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특히 이것이 책일 때는 그 정도가 더 심해져서 대학 때의 교재부터 노트까지 다 보관하고 있다. 그러니 상상해 보시라. 내 연구실과 머릿속이 어떨지...

이 나른한 봄에 우연히 정말, 우연히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정리 컨설턴트라는 요상한 직업의 저자에 의하면 먼저 버리고, 합리적으로 수납하라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간직하는가 하는 기준이다. 그 기준은 물건과 교감하고 대화한 후 마음이 설레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다. 아~~, 내 인생이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지만 빛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난 당장 내 주변의 모든 사물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연구실의 책을 비우기 시작했다. 많은 대학 시절부터 모아온 교재와 내 전공과 무관한 잡지, 몇십년 전의 전시 팜플렛, 언젠가 다시 보려고 모아둔 논문, 영어, 중국, 일본어 어학서적, 지금은 듣지 않는 온갖 종류의 카세트테이프, 가끔씩 화면이 사라지는 비디오테이프, 읽다가 만 단행본 등 한없고 끝없이 버릴 물건이 줄을 이었다. 이때 느낀 것은 정말 사물과 대화가 가능하고, 대화하고 나면 설렘이 없어서 버릴 물건이 수없이 많다는 것이었다. 몇 상자의 책을 버린 덕분에 내 연구실은 깨끗해 졌고 책상 위의 공간도 이제 넓어졌다. 좁다고만 여겼던 연구실 공간이 이렇게 넓었던가? 이제는 쓸모없게 된 책들은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언젠가 쓸 것을 기대했던 물건들은 분리수거하고, 일부는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아무튼 내겐 불필요한 물건이 어디에선가 잘 쓰이게 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고, 무엇보다 공간이 넓어져서 좋다.

아직도 대학 때의 삐뚜름한 글씨와 청춘의 설렘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노트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 젊음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노트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이건 퇴직할 때 설렘 여부를 다시 점검할 계획이다. 의류, 책, 서류, 소품 순으로 정리하고 추억이 깃든 물건은 순위를 가장 나중으로 하라는 저자의 충고가 실감난다.

이제 연구실이 끝났으니 옷으로 넘쳐나는 옷장도 정리해야겠다. 저자가 추천하는 순서와는 좀 달라졌지만, 여교수회에서 멀쩡한데 입지 않는 옷들을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해 기부 한다고 하여 커다란 트렁크 하나 분량을 기부하였다. 따뜻한 나라에서 유학 와서 추운 한국의 겨울을 견딜 유학생들에게 나의 옷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옷장을 정리하고 나면 입을 옷이 더 많아진다고 하니 올 여름 의류 구입은 내년으로 미루어도 되겠다.

이제 과거의 좋지 않았던 기억과 불쾌한 경험들, 화염병과 최루탄 연기가 가득했던 대학시절의 기억과 썩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했어야만 했던 어정쩡한 내 행동들에 대한 기억도 정리해야 될 시기가 되었다. 미래의 보다 좋은 기억들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머릿속에 차있던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도 지워야겠다. 그러면 자주 깜박 깜박 잊어버리는 나의 부실한 기억력도 좀 살아나려나... 여러분도 주변의 사물과 대화하고 물리적, 정신적인 공간을 넓혀 보시라. 더불어 마음까지 넓어질 것을 보증한다. 그러면 인생도 빛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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