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광주민중항쟁 32주년을 맞이해 지난 4일부터 15일까지 12일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평화 연극제'가 열렸다. <물의 편지>는 지난 12일 호남대학교 학생들의 편지낭독으로 진행됐다. 사진은 연극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모습.

극장은 조용해야 한다. 배우들의 대사 하나, 표정 하나를 수많은 관객들이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극장은 ‘반드시’ 조용함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 연극의 시작은 굉장히 소란스럽다. 관객석에서 자꾸만 웅성거리는 소리가 도무지 연극이 시작한 건지 아닌건지 알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웅성거림 속에서 어떤 공통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 혹성, 지구”, “물, 혹성, 지구”. 관객석에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사람들은 계속 “물, 혹성, 지구”를 중얼거리면서 무대로 서서히 걸어 나온다.

이 연극은 UN에서 근무하는 한 남성의 ‘물’에 대한 보고로 시작한다. 그는 지구 곳곳에서 물로 인해 피해를 겪은 나라를 소개하고, 저마다 물에 대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 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신혼여행지의 꽃이라 불리는 ‘몰디브’에 사는 청년은 “사실 이 곳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전 세계인이 석유, 석탄을 지나치게 사용하면서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섬이 잠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가 천국의 땅이라며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부러워하던 몰디브도 결국은 우리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비단 몰디브뿐만이 아니다. 베네치아에 사는 여성도,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소년도 프랑스에도 물이 줄어들고 오염되어 겪은 슬픈 사연을 편지를 통해 호소한다. 베네치아에 사는 여성은 산마르크 광장의 침수를 보여주며 간절하게 말한다.

“몰디브나 베네치아에서 일어나는 일은 서울에서도, 도쿄에서도, 파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물은 돌고 도니까요.”

우리가 아침마다 머리를 감기 위해 펑펑 쓰는 물도, 자동차의 매연으로 더러워진 물도 결국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은 ‘돌고 도는 원리’니까.

마지막 장에 오면 극의 맨 초반부에 배우들이 “물, 혹성, 지구”, “물, 혹성, 지구”이라고 중얼거렸던 대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커다랗고 푸른 물방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물의 혹성’이다. 물의 혹성인 지구는 정해진 물을 재활용한 후 다시 인간에게 돌려 주지만 인간들은 오히려 물의 재활용을 방해하는 꼴이다.

이 극은 배우들의 연기 뿐만이 아니라 물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는 ‘노래’나 ‘랩’을 통해 진행된다. 물에 대한 경각심을 깨운다고 해서 그저 진부한 이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즐기며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극의 마지막에는 새로운 배우가 깜짝 출현하는 데, 바로 5살쯤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다. 그 귀여운 아이는 갑작스레 나와 “와 물이에요”라고 말하고 쪼르르 들어간다. 어른 배우가 했더라면 별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 대사가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오니 마음이 아프다. 정말로 “와~” 외칠 정도로 ‘좋은 물이 저 아이가 클 때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물을 괴롭히는 어른들에게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게 한다.

연극 <물의 편지>는 우리에게 편지를 보낸다. 앞으로 언젠가는 태어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또 그 아이의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지구를 위해 우리는 물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고. “우리는 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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