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감독 레오 까락스의 데뷔작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1984) 는 고독과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해 흑백 영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누가 프랑스 영화 아니랄까 봐 조용하고, 사색적이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할리우드의 ‘스펙터클’과 ‘흥미진진’ 대신 프랑스 영화 특유의 시적인 이미지들과 대사들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자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다.

소년의 이름은 알렉스이다. 소년의 애인에겐 남자가 생겼다. 바람난 애인의 남자는 소년의 가장 친한 친구다. 소년은 기막힌 상황 앞에서 낯선 자기를 만난다. 그리고 그 낯섦 속에서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 간 친구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만 둔다. 그날 밤, 그의 삶의 지도엔 ‘내 생에 첫 살인미수’라는 사건이 날인된다. 소녀의 이름은 미레이유이다. 예쁜 외모를 가졌지만 우울해 보이는 그녀. 그녀는 권태에 빠져 변심한 애인과 파리(Paris)라는 삭막한 환경 때문에 공허상태에 빠져있으며 습관처럼 자살기도를 일삼는다. 알렉스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미레이유의 집 앞에서 미레이유와 그의 변심한 애인이 인터폰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미레이유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낀다. 곧 그는 그녀에 대한 단서들을 모으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그녀가 어떤 파티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는 파티장에서 만난다. 그들이 부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낯설다. 그러나 자신의 아픔과 과거, 꿈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대화라기보단 마치 허공에 독백을 쏟아 붓는 것처럼 보여 막막하고 먹먹한 느낌이 든다. 심지어 알렉스가 자신의 꿈에 대해서 말할 때는 물 끓은 주전자 소리가, 고백을 할 때는 천둥번개 소리가 그의 말을 묻어버리기도 한다. 둘은 집에 가는 열차를 함께 타지만, 엇갈리고 만다. 알렉스는 미레이유의 집에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받질 않는다. 알렉스는 뛰기 시작한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발소리는 이윽고 없어진다. 그가 미레이유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공허를 이기지 못하고 가위로 손목을 그으려던 참이었다. 알렉스가 문을 열었을 때 미레이유는 반사적으로 가위를 자기 품속에 숨긴다. 미레이유는 절망의 얼굴로 마침내 말한다. "알렉스, 나 좀 도와줘." 알렉스는 달려가 그녀의 힘이 되고 싶다는 듯 그녀를 꽉 안아주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포옹 때문에 품속에 숨긴 날카로운 가위에 찔려 죽는다. 그녀의 집 통유리 창 저편엔 또 한 쌍의 연인이 밤하늘을 보며 사랑을 꿈꾸고 있다.

헐벗고 대화하기엔 우리 사이엔 늘 뚫을 수 없는 유리창이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말이다. 오해와 착각에 의한 엇갈림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갈망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그리움이 해소되지 않는 까닭은 그 구체적 대상이 애초부터 내 과거 어디에도 있던 적 없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건 처음부터 노스탤지어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실은 현실에 있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사랑한 적 없으면서 단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을 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 부재한 것을 그리다니. 상상과 기대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노을이 꼭 여명일지는 모를 일이다. 노스탤지어는 이렇듯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어쨌거나 알렉스에겐 잘못 없다. 그녀를 돕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그녀 자신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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