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길, 갑자기 ‘바나나우유’가 떠올랐다. 목이 타서일까. 꿀꺽꿀꺽. 단숨에 마셨다. 달달한 것이 무척 맛있다. 문득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바나나우유를 무척 좋아하시던 외할머니. 왜 갑자기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떠오르는 걸까?

후덥지근한 여름밤, 새벽까지 우리들에게 부채를 부쳐주셨던 외할머니. 그 때는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다. 우리들은 어린이고 외할머니는 어른이니까. 외할머니의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어린 마음에 ‘희생’을 은근슬쩍 강요했었다. 외할머니는 항상 곁에서 우리를 지켰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지켜줄 거라 믿었다.

외할머니는 뭔가를 드실 때마다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이고, 달구라(달다)’ 궁금해서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께서 나이가 드셔서 단 것을 잘 못 드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바나나우유는 예외였다. 단 것은 입에 대지도 않으시지만 그것만큼은 '방긋' 웃으시며 드실 만큼 무척 좋아하셨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외할머니는 시골집으로 다시 내려가셨는데 보고 싶다고 우리가 좋아하는 바나나우유와 함께 집에 오시곤 했다. 누군가가 대문을 흔들어서 얼굴을 내다보면 외할머니셨다. 그 대문조차 참 조심스럽게 두드리셔서 우리들은 외할머니의 방문을 대문소리만 들어도 눈치 챘다. 참 못됐지만 그 때는 외할머니보다 바나나우유가 더 반가웠다. 대문 소리가 나면 한달음에 뛰어나갔던 걸 보면 말이다. 덕분에 바나나우유는 외할머니라는 공식(?)이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외할머니가 조용히 숨을 거두시던 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유년 시절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아직도 대문을 조심스럽게 흔들면서, 바나나우유가 3개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들고 대문 밖에서 우리는 부르실 것만 같은데. 이 기억을 떠올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외할머니의 바나나 우유처럼, 시간이 흘러도 공유할 수 있는 사랑을 위해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보자.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