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윤석문(미술학·06)

오늘은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날이다. 만약 세종대왕(1397 ~ 1450)께서 지금 이 땅에 다시 나타나 팔도를 두루 다니신다면 당시와 달라진 말 때문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으실까? 아마도 달라지거나 새로 생긴 모르는 말에 해괴해 하고 답답해 하시리라 본다. 그런 가운데에도 가장 친숙함을 느끼실 말은 어느 지역 말일까? 흥미롭게도 세종대왕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서울 지역 말이 아니라 함경, 평안, 전라, 경상, 제주 등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말일 것이다. 이들 고장 말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옛말을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변화의 중심 지역일수록 말도 먼저 변하기에 중앙 서울의 말은 더욱 많이 변하고 서울에서 떨어진 지역의 말일수록 점점 더디 변하여 옛말을 여전히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돌멩이가 떨어진 중심부엔 파문이 정온해진 한참 뒤에도 멀리 떨어진 곳은 파문이 아직 일고 있듯이 말이다.

이렇듯 지역의 말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지거나 주어온 말이 아니라 전래해온 우리말이요 보수성이 더 강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사투리’라는 이름 아래 천시하거나 촌스런 사람이 사용하는 개그의 소재 등 흥밋거리 정도로 여기고 있다. 또한 표준어에 들지 못한 지역어는 쓰지 말아야 할 잘못된 말로 여기면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품위 없고 무식한 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 결과 철부지 아이들은 사투리를 쓰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못 배워서 그런 양 여기게 되었고, 최근에는 손자녀 보기 싫으면 며느리 앞에서 손자녀에게 일부러 사투리를 사용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투리는 이를 구사해온 언중의 삶과 정서와 역사가 배어 있는 문화재이다. 특히나 꾸밈없고 소박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곧 보통 사람의 문화가 배어 있는 문화재이다. 꾸밈이 없고 소박하기에 표준어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말을 간직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문헌 기록 이전의 말조차 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사투리는 선조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이를 테면 감기의 이 지역 말인 ‘고뿔’은 ‘코에 불이 났다’라는 뜻을 지녔는데, 이는 영어의 ‘cold’나 중국어의 ‘感冒(gǎn mào)’, 일본어의 ‘感冒(かんぼう)’, ‘風邪(かぜ)’ 등과 달리 감기가 이비인후과 질환임을 우리 선인들이 인식했음을 알려 준다.

최근 초중 교육과정에서는 지역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민주, 인권, 지방 분권을 내세우는 것이 현실임을 보면 언어면에서도 이러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다. 일찍이 세종은 백성이 의사소통하는 권리를 확보해 주기 위해서, 곧 백성의 인권을 위해서 당시 신하들의 엄청난 반대를 물리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15세기 왕으로서는 가히 이단적이며 혁명적인 행동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 지방분권의 시대 자치 민주 인권을 화두로 삼는 시대에 사는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일찍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고 어머니의 태 안에서부터 배워온 지역어 대신에 서울말을 좇으면서 귀중한 문화유산인 지역어가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최근 반세기 동안에 텔레비전 등 첨단 대중 매체가 보급되고, 고속도로 개통 등 교통이 더욱 발달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가는 지역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사투리가 사라지기 전에 이의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수집 조사하여 보존하여야 할 것이다. 말은 한번 죽어버리면 다시 살려 쓰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중앙 지역어인 표준어만 쓰기에서 벗어나 각 지역어를 아끼고 보전하여 써가고 서로 다른 지역어를 배우고 이해해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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