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연제발표는 늘 초록을 보낼 때부터 가슴이 설레이고, 채택되고 나면 기쁘고 막상 발표 준비하면서 부터는 답답하다. 해마다 3월 말경에 열리는 세계부인과학연구학술대회에 참석하고 귀국할 때 마다 항상 아쉬움이 가득찬다. 올해 59번째 열린 이 학회와 인연은 1996년 미국 Wake Forest 의대에 파견교수로 있을 때 시작되었다. 마침 1996년 9월부터 연수를 시작하고 임신된 양에게 산소공급을 적게 하여 태아저산소증을 유발한 후 나타나는 모체와 태아 호르몬 변화, 신장과 대퇴동맥 반응변화 등 실험을 한참 하던 중 1997년 3월에 이 학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실험실 연구비 도움을 받고 샌디에고에서 열린  제 43회 학회에 참석했다. 세계 저명 산부인과, 약리학, 생리약, 병리학, 유전학 학자들이 참석한 학회규모와 우수한 발표내용에 대한 감동은 지금도 기억날 만큼 충격적이었다. 아르지닌으로부터 산화 질소 합성효소에 의하여 생성되는 물질인 강력한 혈관이완제 산화질소를 이용한 비아그라 탄생에 대한 기초 연구발표에서 산화질소 탱크를 연결시켜 이를 마시면 발기불능이 해결될 것이다는 발표를 듣고 청중들이 환호하던 광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감명 그대로 이 학술대회는 앞으로 꼭 참석해서 논문발표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학회 참석 후 돌아와 임신된 양 실험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어느날 지하 실험실에 평가차 온 지도교수는 당부 겸 위로 말씀을 했다. “닥터 김은 미국에 와서 세 가지 만 배우고 가시오, 하나는 지금 하는 실험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산부인과 정밀초음파 공부고, 세 번째는 영어회화를 능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가 보기에는 첫 번째 두 번째는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은 데 영어는 영 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당신도 아다시피 지하 실험실 방에 하루 종일 임신된 양과 둘이 밖에 없는 데 어떻게 영어가 늘겠냐?” 대답했더니 그 뜻이 잘 전달됐는 지 폭소를 터뜨리고 격려했던 과거가 생각난다. 문제는 영어회화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풀리지 않는 숙제.

아쉽게도 임신된 양을 이용한 실험은 마무리를 못하고 1997년 8월에 귀국을 했다. 그런데 1998년 세계부인과학연구학술대회에 우리가 했던 연구가 발표초록으로 선정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왕복 교통비를 포함한 숙식 비용을 미국 실험실에서 도움을 주었다. 이후 한국에서 나름대로 기초연구를 지속하여 해마다 열리는 이 학술대회는 반드시 논문발표하러 참석하였다. 벌써 15년째. 그간 이 학회에서 선정한 우리나라 최초 정식회원이 되었고 작년부터는 학술대회 초록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올해도 샌디에고에서 만난 지도교수와는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 실험 내용은 무엇이냐? 식구들은 잘 지내고 있는냐? 등등 반가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직도 짧은 영어는 사이사이 어색한 웃음과 침묵을 동반했다. 물론 그분은 알 것이다.

미국 실험실에서 양과 둘만 함께 있었음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영어회화 길잡이를 깔아 놓은 것도 몇 년이 되었지만 이번에도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다짐하면 왔다. 내년 올랜도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겠다는 것을. 부디 학생들이여 젊을 때 영어회화 공부는 평생에 힘이 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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