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책 <피로사회>를 읽었다. 의외로 짧은 글이어서 쉽게 생각하였으나 횡간의 의미는 결코 짧지 않다. <피로사회>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명명한 뒤, 성과사회의 과잉활동과 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를 역설하며 '피로'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착취자인 동시에 착취자이다.”

현대사회의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성취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욕구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증가한다. 한순간의 주저함이나 실수 뒤엔 도태된다는 공포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능력까지 갖춰야 하는 성과사회가 되며 <피로사회>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자기착취에 이르게 된다.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 자기착취를 하게하여 더 많은 성과를 올리지만 능력의 소진과 함께 개인은 소멸되고 정신질환 등의 사회적 폐해에 직면하게 된다.

게임이론은 존 내쉬(Nash)의 박사학위논문이 촉매가 되어 급속히 발전, 경제학 이론 전반을 설명하는 거대한 조류가 되었다. 이 이론의 대표적 예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쟁적 균형과 공동체 전체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사회적 최적간의 괴리로 요약된다. 즉 협조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때 보다 항상 높은 보수나 만족을 얻게 되지만, 자신은 협조하는데 상대방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받아야할 보수가 상대방에게 가버린다. 상대방이 합리적이라는 전제가 있는 한 자신은 협조하지 않을 것이며 각각의 보수는 낮아지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피로사회에서는 성과를 기반으로 서로 열심히 해보라고 한다. (아래 ‘죄수 딜레마 게임’ 참고)그리고 모두 잘하면 (10, 10)을 주겠지만 상대방이 자신보다 못하면 자신이 20을 다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구성원들은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과잉을 초래하게 되고 자신을 착취하게 된다. 성과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성취이후에는 공허함과 멈추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에 탈진의 피로는 계속된다. 결국 (10, 10)을 바라보며 달려왔지만 (1, 1)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짜증이 폭발하며 다른 사람에 기대지 못하니 우울증, 경계성 인격장애 등과 같은 크고 작은 정신 질환이 발생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사니(Harsanyi)와 쉘링(Schelling)은 믿음(belief)과 사회적 초점(focal)으로 좋은 보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사회의 제도와 문화, 그리고 규범에 따라 서로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색적 삶과 게으름을 용인하는 문화, 협동과 이타성의 규범, 새로움을 창출할 수 있는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제도 등으로 휴식시간 조차 계획적이어야 하고 육체적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에 머무르게 하는 성과사회의 불안에서 오는 짜증과 허탈함을 극복할 수 있다.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로는 간 때문이야~ 피로가 간 때문이면 좋겠다. 약을 먹고 나으면 피로는 사라지니.” TV프로그램 ‘즐거운 책읽기’ 패널의 이야기이다. 현대사회의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다. 잠시 나를 내려놓고 깊은 심심함에 빠져보자!

참고: ‘죄수 딜레마 게임’ -협조, 협조(10,10)/ 협조, 비협조(0,20)/비협조, 협조(20,0)/비협조, 비협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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