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고 몇 분은 무슨 내용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그저 평범한 길을 왜 오래토록 비추고 있을까.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왜 픽셀이 깨질 정도로 크게 비추고 있을까. 제목이 뜻하는 호수길은 물이 고여 있는 호수가 아닌, 그저 사는 동네 길 이름이 호수일 뿐인 호수길이다. 이 호수길이라는 공간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깜깜한 밤 어느 순간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 낯선 이들이 나타나 하나씩 집을 부수는 소리에 새들이 지저귀던 자연의 소리는 사라진다. 느릿하게 길을 걸어 내려가는 노인과 쉴 새 없이 장난치며 떠드는 아이들도 사라진다. 새롭게 공간을 채우려 하는 누군가는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그동안 머물던 누군가의 공간을 부순다. 계속 보기 껄끄러운 괴기한 상황은 평화롭던 처음처럼 느리고 단조롭지 않다. 오히려 더욱 실감나고 정확하게 전달된다. 호수길이라는 공간을 두고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상황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일이 아닌지라 이런 영화가 아니라면 찬찬히 관심 가질 수 없는 공간의 변화는 불편하고 허망하다. 대사하나 없이 계속되는 공간의 변화 속에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소리 내지 못하는 외침이 숨어있다. 개구지게 웃고 뛰놀던 아이들. 잎 사이로 볕이 스미던 나무. 평화로운 동네의 풍경들이 모두 거대한 포크레인에 밀려간 채 남은 건 거칠고 황량한 공사현장 뿐이다.

깨진 픽셀은 그렇게 자신의 기괴함이 주민들의 얼굴 위로 스미게 한다. 숱한 독립영화 시상식에서 호평을 받으며 종종 아방가르드한 전기음악과 함께 이 영화가 틀어진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괴하다. 사실 기괴한 건 화면과 소리가 아니라, 보통의 풍경이 우리에게 기괴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다큐의 형식은 현실을 기형적으로 왜곡시키며 불편한 현실을 불편한 그대로 꼬집어내기 위한 탁월한 선택.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은 우리에게 온갖 방식의 불편함으로 내보여진다. 고루한 현실. 안타까움을 마주하고 나오는 하품은 보는 이 스스로를 완벽한 현실 앞에 세우도록 한다. 극단적인 리얼리티 속에 숨겨진 기괴함은 그렇게 우리를 불편함과 마주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출적인 면모에 감탄하느라 이 영화의 메시지를 놓친다면 그 또한 슬픈 자화상이 될 뿐이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확실한 사실 하나는 그렇게  지어진 새 공간에 들어올 누군가 역시 또 언제 그렇게 밀려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나칠 정도로 지루하고 따분한 불편함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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