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세무직공무원에서 변호사까지…“포기하지 말고 규칙적 생활해야”

흔히들 ‘변호사’라고 하면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부모의 각별한 뒷바라지를 받으며 성장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학과실에서 밀걸레 청소를 하고 과외를 하며 모은 돈으로 공부해 변호사가 된 이도 있다. 우리 대학 김민정 동문(국어국문학·98)이다. 김 동문을 만나 화려한 뒷배경을 지닌 경쟁자들 사이를 꿋꿋이 이겨내며 변호사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을 들어봤다.

▲시험을 좋아한 학생
“시험은 돈 없고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험에 합격만 하면 사회에서 인정해줬다. 그래서 시험이 좋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김 동문은 ‘생존’을 위해 시험에 응시했다. 그가 처음 본 시험은 우연히 알게 된 ‘관세사 시험’이었다. 연봉도 높고 유망직종이란 이유에서였다.

모든 강의 시간표를 오전으로 짜고 오후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근로장학생이나 두 세 개의 과외를 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 틈틈이 책과 테이프로 시험 공부를 한 김 동문은 관세사 시험에 ‘운 좋게’ 합격한다. 하지만 곧 관세사 일을 그만둔다. 기업이 주된 고객인 관세사 일을 하기엔 나이도 어리고 여성이란 이유도 무시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준비한 관세직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2003년부터 인천 공항 세관으로 발령받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당시에는 법학 강의 40학점을 이수한 사람만이 사법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사법시험을 보고 싶었던 김 동문은 대학시절 미리 학점을 이수해 놓았다. 절대적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 쉽게 시작할 수가 없었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시험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사법시험은 녹록지 않았고 1차 시험에 불합격했다. 다시 관세직 7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합격하고 세관에서 7급 공무원 일을 하게 된다.

세관은 법조항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법 조항이 아닌 선임자가 하던 대로 일을 처리하다보니 소송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내국세에 비해 관세 분야의 연구는 활발하지 않았다. “관세법을 공부해 법 조항을 새롭게 해석해 보고 싶었”던 그는 2007년 2월, 회사에 연가를 내고 본격적인 사법 시험 준비에 들어간다. 1차 시험에 합격해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중 김 동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업 실패로 움츠려든 아버지의 어깨를 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2차 시험에 탈락했다.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받고 있던 월급으로 좀 더 편히 살 수도 있었지만 월급의 대부분을 책값 사는데 썼다. 아버지께 여행 한 번 못 보내드리고 맛있는 음식 한 번 못 사드린게 너무 죄송했다.”

▲윤평현 교수와의 특별한 인연
김 동문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2008년 10월부터 준비해 2009년 2월에 사법시험 1차를, 10월에 2차에 합격한다. 시험 준비 2년 만에 합격의 문턱에 들어서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다. 그리고 현재 일하고 있는 정부법무공단에 변호사로 입사한다.

변호사로 입사하기까지 수많은 시험을 치르는 동안 윤평현 교수(국어국문학·국어학)에게 전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합격을 “그 누구보다 기뻐해주시던 윤 교수님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김 동문은 대학시절 딱 한번 전액 장학금이 아닌 ‘반액’ 장학금을 받은 적 있다. 등록하려면 약 40만 원을 더 내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비를 모으던 그에게 40만 원이 있을 리 없었다. 빨리 취업해 돈은 벌어야 해 쉽게 휴학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중 지인의 권유로 돈을 빌리기 위해 윤 교수에게 찾아갔다. 활발한 성격이 아닌 김 동문은 윤 교수에게 찾아가기 전까지 수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거절당하고 나왔을 때의 초라한 뒷모습이 생각나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용기를 내 교수님을 찾아갔고 흔쾌히 등록금을 빌려 주셨다.”

이후 두 달 여 동안 조금씩 빌린 돈을 값아 나갔지만 윤 교수는 “책 값에 쓰라”며 일부를 돌려주기도 했다.

▲아직도 꿈을 꾸는 김 동문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관세사와 7급 공무원을 거쳐 변호사가 된 김 동문. 그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고도 하지만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말한다.

“생각하고 있는 꿈의 3분의 1 정도를 이뤘다”는 그는 ‘스페셜리스트’를 꿈꾼다. 김 동문은 겨우 1년차 변호사이지만 관세청에서 정부법무공단으로 들어오는 큰 소송을 맡기도 한다. 다른 변호사들과 달리 세관에서 일한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전문성을 발전시켜 더 자신감있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은 게 그의 최종 꿈이다.

또한 김 동문은 “직장을 가지면 안주하기 마련인데 늘 더 큰 꿈을 꿨다”며 “나이가 많지는 않나 걱정도 하지만 학위를 따러 유학 가고 싶은 꿈을 여전히 꾸고 있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말고 계획적 생활 하라”
때로는 빚쟁이들이 집은 물론 학교나 회사에까지 찾아와 김 동문을 협박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공부하는데 있어 촉진제가 됐다. ‘절실함’을 키워줬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시간을 제쳐두고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에 떨어지면 돈을 벌 수 있었던 시간과 힘들게 번 생활비가 사라지니 ‘이번 아니면 안 된다’는 절실함 뿐 이었다. 절박했기에 하늘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도운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김 동문은 후배들에게 “시험공부가 힘들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계획적인 생활을 하라”고 조언했다.

“수없이 울고 좌절하고 싶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잠을 청하는 규칙적 생활을 꾸준히만 하면 모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민정 동문은 ▲1998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입학 ▲2001 관세사 시험 합격 ▲2003 관세직 공무원 9급 합격 ▲2006 관세직 공무원 7급 합격 ▲2009 사법시험 최종 합격 ▲2010∼11 사법연수원 수료 ▲2012~현재 정부법무공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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