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기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공중을 갖고 있었다.- 가브리엘 타르드, 『여론과 군중』 -타르드(1843~1904)는 신문이 발명되기 전과 후의 사회집단을 군중과 공중으로 구분하고 있다. 군중은 물리적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이 단지 모여 있는 것이라면 공중은 서로 마주치지도 않으며 앞으로 만날 가능성도 없는 사람들이 같은 신문을 읽고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믿음이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의식하는 사람들로 개념화했다.그는 공중을 15세기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성경의 보급에서 기원을 찾으며 프랑스대혁명기를 거쳐 폭발적으로 형성되었고 드
‘표현의 자유’는 모든 논쟁을 잠재우는 주문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자유로운 표현은 민주사회가 지켜야 할 소중한 권리지만, 동시에 타인의 자유를 파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매체 환경의 변화는 사적 대화를 공론장으로 끌어냈고, 인터넷 공간 속 주목 경쟁은 더 자극적인 소재 찾기로 이어진다. 원치 않더라도 누구나 여과되지 않은 말과 왜곡된 인식에 노출되는 상황이다.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혐오(증오)범죄’라는 개념이 주목받으면서 그 기저에 깔린 혐오인식이 조명 받게 되었다. 혐오범죄는 혐오인식이 드러난 극단적 형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 품이 안전하다는 것을 믿고 그 품에 안겨 엄마 젖을 먹는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걷고, 혹여 넘어지더라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기에 걸음을 걷는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약속을 하는 것도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와의 약속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믿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무엇도 말할 수 없고 행동할 수 없다. 믿음을 의미하는 신(信)이라는 한자어는 ‘사람(人)
3월 17일을 전후한 요즘 한낮 기온이 20도에 육박했다. 나무심기 좋은 시절이다. 식목일은 이보다 20일 정도 늦은 4월 5일이다. 미군정이 1946년에 4월 5일을 식목일로 삼고, 정부수립 후 1949년 대통령령으로 최종 지정하였다. 그보다 앞서 1911년 조선총독부는 4월 3일을 식목일로 정했다. 식목일은 2006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우리 나이 때 사람들에게 학창시절 학교를 안가는 식목일이 너무 좋았다.식목일은 대개. 24절기인 청명(淸明)과 겹친다. 올해 청명도 4월 5일이다. 또 청명과 거의 비슷한 날짜인 한식(寒食
이 사십 주년이다. 1982년 황석영이 기획하고 김종률 작곡, 백기완의 시를 가사로 만들어 ‘일군의 젊은이들’이 하룻밤 만에 녹음을 해 전국에 비밀리에 유포시킨 불법 테이프가 의 탄생이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광주시민들의 억울함과 혼을 달래기 위해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1978)에 착안해 만든 노래굿으로 앨범 전체의 이름은 《넋풀이》다. 총 7곡의 노래와 무당의 사설, 문병란 시 낭독까지 아홉 개의 트랙이 있는 《넋풀이》의 마지막 곡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에 침입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마스크 없는 생활이 어색해졌고, 처음에 어색했던 QR코드는 이제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을 하루하루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그리고 오미크론까지 새로운 용어들이 뉴스에 오르내렸고, 생전 한 번도 가지 못했던 나라에서 발생한 변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왔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경험해 왔던 일상이 코로나19와 함께 완전히 새로 바뀌었
최근 ‘가족’에 관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오늘날 달라진 ‘가족’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문학과 영화, 가족을 그린 예술가들의 그림 등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만나는 가족의 모습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면을 다 들여다보지 못할 만큼 가족의 개념은 확장되었다. 법률적으로 상징화 되어버린 가족이라는 개념은 이미 단순한 혈연·혼인관계를 넘어 여러 형태의 가족으로 드러나고 있다.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자녀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하는 가족의 사전적 의
시계가 없던 시절에 고대인들은 어떻게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 가족을 이루고,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농사를 지어야 했다. 농사는 달이 아닌 태양의 기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날마다 뜨고 지는 태양이 시계가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 태양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할 ‘때’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태양 주기와 함께 일정한 ‘때’에 따라 움직이는 하늘의 별자리를 발견했다. 북극성 주위를 돌고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흥미롭게도 유심히 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전의 광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광주 사람들은 주로 무얼 먹고 어떤 음악을 듣고 극장은 또 어디였을까?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나 졸업하고 난 후 인기 있는 직장은? 그런 질문은 오래된 역사학자들이나 던지는 거라고 멀리하는 풍조가 강하지만 설사 궁금증을 갖는다고 해도 모든 것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수렴되어버린다. 광주는 1980년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책임자는 아무런 단죄를 받지 않은 채 ‘자연사’하게 생겼고 역사는 아직도 10일간의 비밀을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니 광주의 40년이 오
생물학자들 사이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 두 사람이 산을 오르다 곰을 만났습니다. 놀란 두 사람이 곰에 쫓겨 산을 뛰어내려오는 사이, 갑자기 한 사람이 발을 멈춰 신발 끈을 묶기 시작했습니다. 내려가던 사람이 물어보았습니다. “얼른 도망가야 곰에게 잡아먹히지 않아요!” 그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전 당신보다 한 발짝만 빨리 도망가면 됩니다.”‘적자생존(Survival of fitness)’은 진화론의 핵심 개념입니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질이 살아남아 그 형질이 후대에 유전되는 원리죠. 그런데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하여 오해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약육강식·적자생존·승자독식이라는 냉엄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나아가 만인을 향한 만인의 인정투쟁이라는 무한경쟁에 시달린다. 생존과 경제발전이라는 시대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와 같은 처절한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낙오자와 패배자를 만들고 시기와 질투, 혐오와 경멸, 분노와 적개심을 잉태하여, 사회분열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렇듯 상생과 배려의 미덕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은 ‘악플’을 통해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우리 세대는 마을 초등학교에서 음력 5월 5일 행사를 기억할 것이다. 어린 학생들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행사 준비에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아이들에게 가혹했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날 함께 모여 아이들이 준비한 각종 덤블링과 같은 퍼포먼스를 구경하고 즐거워했다. 학교 가장자리에 설치된 큰 그네는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다. 동네별로 나눠 서로 장만한 음식으로 시끌벅적했다. 한복차림의 할머니가 손주의 재롱에 즐거워했다.그런 행사가 80년대를 거치면서 어느덧 사라지고 기
법의 유일한 목표는 판결이며, 그것은 진실과 정의와는 무관한 것이다. 이 점은 심지어 부당한 판결조차도 판결의 효력을 지니는 데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자들』중 -권경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2018)은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쫒는 작품이다. 그 사람의 과거는 동지의 자살을 방조하고 그 자살마저도 혁명에 이용하기 위해 동지의 유서를 대신 쓴 야만이었다. 야만을 행했다는 댓가로 감옥까지 다녀온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현재는 기타를 유일한 말동무 삼아 피아졸라를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AI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AI는 2020년에서 2021년까지 동안 뉴스, 인터넷 포털에서 하루가 멀게 등장하였습니다. 비단 미디어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일상 가운데에서도, 시장에서도, 농가에서도, 산업 현장에서도, 그리고 이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의 연구 주제에서도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AI는 그만큼 우리 일상에 깊게, 그리고 심각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들어보았지만 모두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오늘의 주제는 AI입니다.AI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AI는 크게 두
연예계와 스포츠계의 학교 폭력 논란이 확산일로를 거듭하면서 폭력으로 물든 학교생활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학폭 미투(Me too)’가 사회적으로 번지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의 ‘사실무근’이라는 해명이나 ‘폭로자가 가해자’라는 논란이 증폭되면서 이미 싸늘해진 대중들의 시선은 돌리기 어렵게 되었다. 학교 폭력 문제가 고질적인 문제라는 통계는 이미 교육부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2020년 1.6%에서 0.9%로 0.7% 감소했다는 학교 폭력 수치는 코로나로 인해 등교 일수가 줄어들어 나타난 결과일 뿐이었다. 오히려 사이버폭력(8.
신문기고에 매번 '시간'과 관련한 글을 써왔다. '시절(時節)' 얘기다. 음력 1월 1일, 설날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시간을 전공으로 하는 연구자로서 설날의 의미를 새롭게 새기고 싶었다. 필자의 시선은 하늘에 있다.옛사람들도 하늘을 보고, 시간을 알아내고 만들어냈다. 그들도 항상 천제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 흐름의 규칙성을 알아냈고, 물의 흐름 정도를 체크하여 시각을 체크했다. 천체 운행과 자연 현상에 대한 끈덕진 관찰을 통해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절의 탄생도 마찬가지였다. 음력은 달[月]의 동작과 규칙성을 알아낸
비대면 시대에 오히려 ‘나’와 더 잘 대면하게 되는 것 같다.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화면에 담긴 내 모습을 볼 때면 낯선 타인과 마주하는 듯하다.바쁘다는 이유로 ‘나’와 마주할 틈도 없이 살아 왔거나,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나’를 방치한 탓이다. 이번 학기 학생들에게 자아성찰을 위한 글쓰기를 진행하면서 지금 나에게도 온전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글쓰기에 앞서 이성과 감성을 균형 있게 해 줄 수 있는 미술 작품 속 여러 ‘자화상’들을 공유하였다. 자화상은 그림마다 정서를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다. 화가에게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동물의 왕국, 동물농장, 환경스페셜, 하나뿐인 지구... 한번쯤 이름을 들어본 익숙한 TV 프로그램입니다. 동물들, 더 나아가 야생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죠. 우리와 다르게 생긴 모습, 우리와 다른 행동, 우리와 다른 생태 등, 사람들은 동물에 대하여 호기심과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동물들과 함께 혹은 싸워가면서 문명을 일구어왔습니다.“인류 최초의 학문은 동물행동학입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님께 서 한 강연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면
어른들의 귀에 익숙했던 정월 대보름, 삼짇날, 한식, 단오, 유두, 칠석, 백중, 중양절, 동짓날 등은 사라졌다. 대보름과 동짓날이 그나마 간간히 명맥을 유지했지만 그 생명력도 이제 다한 듯하다. 이들 명절은 50년 사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종적을 아예 감추거나 희미한 자취를 보일뿐이다. 그다지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했다.명절날 날짜를 써놓고 보면, 옛사람들은 숫자에 대단히 비중을 두고 삶을 개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숫자는 시간과 연결된다. 명절을 배치해 시간의 마디마디를 연결함으로써 시절(時節)을 누리고
페스트는 공포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죽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초조와 불안 속에서 겁먹은 토끼처럼 당황하며 추억을 되씹었다.- 알베르 카뮈,『페스트』 중인용문에서 페스트(pest)는 코로나(corona)로 바꾸어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2019년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는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식될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낳고 있다. 전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