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목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주목을 받으면 어느새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심장은 콩닥콩닥, ‘심장이 뛰고 있구나’하고 느낄 정도로 뛰어댄다. 그런데 요즘은 주목받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주목 받길 원하는 사회’이며 ‘주목 할 수 있게 해주길 바라는 사회&rsq
7막 7장의 저자 홍정욱은 그의 책에서 ‘나는 가슴 한 구석 살아있는 젊은 내 꿈을 배반할 수 없었고, 주름진 얼굴로 자식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부모님을 단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내가 고등학생 때, 나는 이 구절을 다이어리 맨 앞장에 적어두고 항상 읽어보곤 하다가 어느새 외우기까지 했다. 애초에 좋은 배경에서 태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느꼈을 해방감. 비단 해방감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왠지 모를 허무함과 허전함 까지. 그 허무하고 허전한 마음에 해방감을 불어 넣었을 테고, 해방감과 함께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 어떤 환상까지 보탰을 것이다. 그러나 새내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해방감은 해방감일 뿐 진정한 해방은 아니라는 슬픈 말을 전해주고 싶다. 애석하게도 우리
무얼 해야 할 지 막막하고 내 앞길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 그 때, 그 누군가 내게 말했다. ‘노 텡가스 미에도(No tengas miedo)’. 쿠바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란다. 쿠바 사람들은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에도 ‘노 텡가스 미에도’라고 한단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ls
이 시대 대학생들의 공통된 화두는 취업일 것이다. 일부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경제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특정 후보를 지지해 논란이 된 사건은 대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총학생회장들이 MB의 장학생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들이 표면적으로 MB를 지지하는 이유는 청년실업극복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는 개인이 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큰 사회에서 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많은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과 연대해 단체를 조직하고 용기라는 힘을 갖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단체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을 보면, 각 집단의
지난 6일부터 이틀 간 우리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39대 총학생회 평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중 총학생회가 가장 잘한 사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반환투쟁’과 ‘취업박람회’를 들며 그 이유로 ‘학생들의 관심사를 잘 반영한점’과 ‘취업문
후배가 취재하며 찍은 사진들을 점검하며, 사진 속 낯익은 얼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지난 31일 대학본부 앞에서 있은 시간강사노조 기자회견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에 비장함보다는 담담함이 묻어나는 한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분명 예전에 들었던 교양수업의 선생님이었다. 그때 강의를 떠올리자면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내가 선택한 수업이었지만, 항상 수업
다음달 14일은 우리 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있는 날이다. 학생회 선거의 올해 분위기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올해도 총학생회 선거는 단선으로 치러질 전망이고, 총여학생회는 구성될지 미지수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올해는 투표율 50%를 넘어 연장투표 없이 하루 안에 투표가 끝날 수 있도록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후보는 학내 여기저기서 추천인
인문학은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취업에 무작정 달려가는 학생에게 ‘너 잘 가고 있니’ ‘가는 길이 옳은 길이 맞니’라고 끊임없이 묻게 만든다. 나는 그런 인문학의 힘이 ‘전남대학교’ 안에서는 어떻게 발휘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표면적으로 우리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되던 1948년 인권의 개념은 크게 개인의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정리됐다. 자유권은 신체, 정치, 언론, 출판, 재산 등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여겨진다면, 사회권은 교육, 문화, 환경, 복지 등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보장받을 권리이다. 인권을 이야기할 때 어느 하나만을 중시할 수 없다. 1993년
1학년 전공과목 수업 첫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칠판에 세로 선 하나를 그으시고는 앞으로만 쭉 뻗어가는 세로선처럼 취업이라는 목적 앞에 토익공부와 컴퓨터 자격증에만 목매여 대학생활을 보내지 말라고 하셨다. ‘목적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 시대를 사는 학생들은 ‘목적’ 앞에 이중성을 취할 수밖에 없
“누가?”라는 물음은 치명적이다. 인터넷에서 ‘A모양과 B군의 연애’라는 기사가 뜨면, 네티즌들은 그 ‘누구’를 찾기 위해 수백 개의 리플을 달고 아고라 광장을 누빈다. 이러한 독자들의 취향을 그 누구보다 먼저 간파한 기자들은 한 사건이 터지면 사건의 본질에 문제점을 제기하기 보단, &lsqu
예술 작품은 세상을 보는 거울이다. 세계의 다양한 음악 속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사람들의 아픔, 시대정신이 함께 한다. 푹푹 익힌 ‘장’처럼 민족 저변의 정서가 깔린 각 나라의 민요, 젊은이들의 저항이 담긴 노래와 사운드는 시대를 관통한다.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와, 그 시대인의 목소리가 없는 고전은 없다’는 손
미래학자 토플러는 알루미늄 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했던 아내가 흑인과 백인이 함께 수영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회사 규칙을 바꿔버리는 것을 보고 ‘미래는 참여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참여’하며 살아간다. 작은 모임에서부터 투표를 통한 정치 참여, 거리를 물들였던 응원전, 노조 활동
신문사 선배에게 항상 듣던 말 중 하나가 “공부 좀 해라”는 말이었다. ‘보다 많은 지식을 쌓고 보다 많은 정보를 알아라’는 말이다. ‘많이 안다’라는 말은 인간의 지배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하기도 한다. 자연의 법칙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를 낳았고 현대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전남대학교 학생은 학점 따서 취업하는 일반 대학생과는 다르단 말이다” 5·18 특집을 맞아 ‘5월 어머니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성례 동문을 만났다.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가자 동문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후배들을 크게 훈계했다. 옛 선배들의 5·18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