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방영된 김연아 선수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김연아 선수가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으며, 해외 유명 선수들의 입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인정을 받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스포츠 스타의 다큐멘터리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엄청난 강도의 훈련과 부모님의 희생으로 어려운 가정환경, 신체적 약점, 열악한 훈련 환경을 딛고 정상에 오르는 각본을 따른다.2023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 마찬가지다. 도 전형적인 각본에 따라 영국의 스포츠 스타
세계인권선언 제19조는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며, 이 권리는 주로 자기 의견과 사상과 정보를 전달할 권리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 권리는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춤과 그림 등 다양한 형태의 표현을 포함하고 있다.그렇다면 감정 표현도 이에 포함될까?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가 자유롭지 않아 보이는 건 사실이다. SF 시리즈 의 ‘벌컨’에서는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벌컨은 사실상 군사독재이고, 벌컨인들이 자기
2022년까지 베트남 이민자 커뮤니티는 두 번째로 큰 한국의 외국인 이민자 커뮤니티가 되었다. 베트남인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약 10.5%를 차지하고, 베트남 여성은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가운데 중국(3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23%) 수를 차지한다(e-나라지표, 결혼이민자 현황 2022). 베트남 사회에서의 돌봄 및 가사 노동 변화 추이를 지속적으로 주목함은 한국-베트남 다문화 가정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하다고 본다.오랫동안 유교의 영향을 받기도 한 베트남은 1975년 내전의 종식과 함께 사회주의를 선택했
공간은 사람을 보여준다. 만약 어떤 공간이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면, 그 공간은 특정 대상에 대한 공간을 만든 사람의 시각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행복주택은 정부가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일정 소득수준 기준을 충족한 무주택자에게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행복주택은 대학생, 사회초년생을 비롯한 청년, 신혼부부 등과 같은 특정 대상에게 공급되기 때문이다.2023년 입주 자격이 완화되지 않은 광주광역시 행복주택 공고에서 대학생, 청년을 대상으로 공급된 행복주택은 주로 16형~26형이다. 4평에서 8평
며칠 전 전남대학이 ‘글로컬대학30’(글로컬 사업) 사업에 탈락했다는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접했다. 기사를 확인한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를 비롯한 대학원생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은 탈락 이야기로 술렁였다. 보수 정권의 지역대학 길들이기라든지, 학과나 학교 간의 통폐합을 추진하는 대학들만 합격시켰다는 각자의 추측들이 오갔다. 물론 국책사업하나로 운명이 결정될 만큼 전남대학의 입지가 부실한 것은 아니다. ‘국가거점국립대학이’라는 위치는 적어도 폐교는 걱정해도 되지 않을 만큼 안정감을 주고 있다. 진짜 위기에 처한 대학은 지역의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로 계급을 구분한다. 두 계급은 잉여생산물을 생산하고 착취하는 관계다. 그의 설명은 계급이라는 틀을 활용해 산업자본 형성에서 나타난 부조리를 설명하는 이론이었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산업 구조의 변화로 다양한 노동형태가 나타나면서 이론의 설명력은 약해진다. 특히나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법치국가 안에서 계급은 별 의미 없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계급은 과거의 유산이다. 그런데 정말 계급이 사라진 걸까?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신분제 사회처럼 드러난
유럽인들이 한국을 처음 방문할 때 놀라는 장면 중 하나는 길거리에서 폐지, 고물을 주워 리어카로 끄는 노인들이다. 나도 이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물어보니 노후준비가 잘 안된 분들이라고 들었다. 내 고향 네덜란드에서는 대부분 노후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더욱 놀랐다. 퇴직연금도 쌓이고 국가에서 연금을 지급받기 때문에 노인빈곤 문제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노후 준비는 잘 되셨나요?”라는 말은 속된 말로 꼰대들의 입마저 닫아버릴 정도로 무례한 질문에 속하는 것 같다.청
요즘 흉기 난동이나 살인 예고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지난 7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한 남성이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람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는 한 차량이 사람들을 향해 돌진한 뒤 인근 백화점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져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이상동기 범죄’ 혹은 ‘묻지마 범죄’로 분류되는 두 사건의 범행 동기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사건의 공통점 중 하나는 분노의 감정으로 볼 수 있다. 분노는 각 사건의 피의자 조선(33)과 최원종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올해 8월 15일에 열린 광복절 78주년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의 한 대목이다. 이어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입니다.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매년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보고서를 통해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는 한 국가의 정치 환경을 ‘선거 과정과 다원성’ ‘정부의 기능’ ‘정치적 참여’ ‘정치문화’ ‘시민적 자유’ 다섯 가지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그 결과를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결함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혼합체제’(hybrid regime)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로 구분한다.2015년 5.55까지 올랐던 세계의 민주주의 지수는 2
세계보건기구(WHO)가 2023년 5월 5일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 선포를 해제한다고 발표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과 파장은 세계 인신매매 범죄에도 큰 부정적 변화를 초래하였다. ‘현대판 노예제’라고 불리는 인신매매는 강제 노동, 성노예 및 인신매매업자, 또는 타인을 위한 상업적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사람을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강제 결혼의 맥락에서 배우자를 제공하는 것, 대리모, 그리고 장기 적출도 포함된다.(인신매매의정서 제3조) 인신매매는 한 국가 내에서 또는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할 수 있는데, 코로나1
요즘 사회보장법과 사회복지법을 연구하고 있다. 흔한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로 ‘상병수당’이 있다. 영어로 Sickpay, ‘아픔+돈’이라고 한다.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아파서 근무를 하지 못할 때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물론 독자들도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현재까지 그런 제도가 없다. 있었으면 ‘열나게’ 열심히, ‘열날 때’ 더욱 열심히 출퇴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만이 OECD 나라들 중 유일하게 아파도 쉬지 못한다. 소중한 휴가(vacation)를 병가(sick leave)로 쓸 뿐이다. 근로자는 여가 시간에 아파야 한다는
※본 글은 드라마 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누구에게나 평생 잊지 못할 괴로움으로 가득 찬 순간이 있다. 최근 파트2가 공개된 의 문동은(송혜교)에게는 그 순간은 고등학생 시절의 집단 괴롭힘이었다. 그것은 교통사고와 같았다. 그저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박연진(임지연)과 그 친구들을 만났을 뿐이다.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은 동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동은은 연진과 그 친구들을 향해 그리움과 닮은 깊고 진한 증오의 감정을 품게 되었고, 일상에서 들려오는 삼겹살 굽는 소리와 사진 찍는 소리는
대통령의 말과 국회의원의 표결에는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파급력이 있다. 그래서 권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대통령실이나 국회를 떠올린다. 그곳에서 법이 제정되고 집행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강력한 권력을 갖는다.앞 문장의 표현에도 드러나듯 은연중에 권력은 소유물로 비유된다. ‘권력을 갖는다’는 표현에는 특정 개인이 권력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권력을 휘두른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야구 방망이나 회초리에 빗댄 은유인데, 그 표현에는 권력자가 손에 권력을 쥘 수 있고, 권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만약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거짓말로 누명을 씌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자신의 결백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심정이 어떨까? 진위여부는 안중에 없이 그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마녀사냥 삼더라도, 억울한 피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면? 또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가식적으로 꾸민 가짜 삶의 이력들은 어떻게 걸러내야 할까? 타인으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평소의 언행이 ‘신중하고 정직해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괴테의 말처럼 “행실은 각자
5·18기념재단에서 란 제목으로 강연 중 진태원 선생(자크 랑시에르 『불화』 번역)은 1980년 5월의 사람들을 언급하는 도중 2~3분간 침묵해버렸다. 올해 첫 회인 박효선 연극상 수상작인 의 나무닭움직임 연구소 장소익 대표는 수상소감으로 “1996년에…”란 말 이후로 아무 말도 못 잇고 자리에 앉아버렸다.그들의 침묵은 어떤 말보다 지켜보는 우리에게 감정의 공진화를 일으킨다. 소리도 나지 않는 몸짓임에도 숨을 죽이게 된다. 그 공백과 침묵 속에서 생겨난 그들과 우리들의 일시적 공동
“7,881,809.”이 숫자는 하나하나의 생명입니다. 더 자세히는, 우리나라에서 일 년간 투명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가는 한 마리 한 마리 새들의 수입니다.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새들은, 인간이 만든 유리창 앞에서 날개가 꺾여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투명 유리창은 미관상 아름다워서, 채광에 용이해서, 건축 구조상 안정적이어서 등 여러 이유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투명 유리창이 하루 약 2만 마리의 생명을 빼앗아 간다면, 과연 아름답게만 보일까요? 오늘의
나는 가끔 언어가 빙산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기호로 표현된 문장 이면에 더 많은 내용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랑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사랑을 이해할 뿐이다. 누군가에는 섹스가 사랑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정서적 교감이 사랑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겐 부모님과의 관계가 사랑의 이미지 아닐까?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쓰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을 둘러싼 수많은 혼란은 , , 등
최근 한 기관에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며 ‘분단’된 우리나라의 현실과 ‘통일’ 염원의 희망을 공유하였다. 12강의 강좌 중 영화 에서 만난 북송사업의 실태와 분단의 아픔, 이산가족의 슬픔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파고들었다. 영화는 식민 지배와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슬픈 역사를 이산가족이 된 한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간다.북송사업은 일본과 북한에 의해 체결된 재일교포 협정으로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당시 ‘지상 낙원’이라는 정부의 선전에 속은 교포들이 북한으로 건너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매일 매일 추석, 한가위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싯적 어린아이의 마음을 아련히 풀어본다. 먹고 사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1960~70년대 태어나고 그 시대를 경험했던 지금의 어른들은 실제 먹는 일이 중요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우리 말속에는 먹고살기 힘들어했을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스며들어 있다.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추석, 한가위는 더없이 고마운 시절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조상을 기리기 위해 차려진 푸짐한 추석 차례상 음식들은 차례를 지낸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맘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