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낭독회, 북스테이, 독립출판물…맛과 멋이 있는 곳“지역 책방 지속가능하려면 구조 바뀌어야” 광주에 새로 문을 연 책방들이 있다. 그곳의 풍경은 남다르다. 간판이 없거나, 2층 구석에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볼 수 없고, 독서모임이 한창이거나, 낯설지만 개성 넘치는 독립출판물이 가득하고, 시인과 직접 시를 읽을 수도 있다. 본지에서는 지난해 문을 연 광주의 작은책방 8곳을 소개하고, 10년 새 절반으로 준 책방의 현실도 살펴보고자 한다. 올봄, 책방의 봄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는 책 피는 봄이 오기를
미수습자 9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온전한 인양만이 문제해결 열쇠” 다시, 봄이다. 2014년 4월과 2016년 4월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달라질 것 없는 고통 속에서 시간은 어느새 2년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아픈 몸이 오히려 정상”이라 말하며,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딸 허다윤 양을 기다리는 박은미(46), 허흥환 씨(52)를 만났다. “우리에게 700일이니, 2주기니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직 2014년 4월 16일을 살고 있습니다. 그 끔찍했던 날이 2년째 반복되고 있어요. 2년
민법·법철학 연구 주력…교황 베네딕토 16세 저서 최다 번역 47년 전 우리대학 법학과에 입학 후 반세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너무 많은 사연이 겹겹이 쌓여 차마 말로는 다하지 못하겠다는 이. 지난 2월 퇴임한 정종휴 교수(법학전문대학원)를 만났다.정 교수는 먼저 “전남대와 꽃동네대학교에서 강의를 이어가고 있어 학자로서 생활의 외연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기분이다”고 근황을 전했다. 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로 부름을 받은 소감도 전했다. “꽃동네 정신은 사랑의 복지 실현이다. 이에 기여할 수 있어 기쁘
국어 의미론 연구에 헌신… 동료 후학 정년퇴임 기념 논총 발간 길이 끝나는 곳에 스스로 길이 되어 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40여 년을 함께한 교단을 떠나며 윤평현 교수(국어국문)는 다시 길이 되고 있다. 그는 “대학 입시에 떨어졌고 이후에도 어려운 일은 많았지만 긍정적인 사고로 이겨낼 수 있었다”며 “교수는 천성에 딱 맞는 일이었다. 덕분에 즐겁고 행복하게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간 하고 싶었지만 연구와 강의에 밀려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지내고 있다”며 “어학공부와 책 읽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설마 올까 싶었고,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왔다. 1년 전 취임의 변을 쓸 때만 해도 ‘밥이 먹히지 않는다’며 위장병을 걱정했는데 이젠 밥을 너무나 잘 먹어 살 찔 걱정을 해야겠다. 지난 3년 대학생활의 모든 것이었던 . 이곳을 계속 했던 이유는 사람 때문이었다. 신문이 발행되는 월요일이면 두근댔다. 신문을 들고 길을 걷는 독자를 볼 때면 설레었다. ‘신문 더는 못 하겠다’싶다가도 어느새 다음 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더 좋은 신문을 만들고 싶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으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듯 독자들에
우스갯소리일지도 모르겠으나 ‘아르바이트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과, ‘아르바이트만 해서는 딱 굶어죽기 좋은 나라’라고 불리는 한국. 두 나라의 아르바이트 환경이 궁금했다. 어떤 차이점이 있어 그러한 평을 듣고 있는지 한국과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풍부한 우리 대학 토키오 와타나베 씨(Tokio Watanabe, 일어일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를 만나 한국와 일본의 아르바이트 노동 환경에 대해 물었다.토키오 씨는 가장 큰 차이로 최저임금 문제를 꼽았다. 최저임금(일본의 경우 지역마다 최저임금은 차이가 있으나
당연하게 지키지 않는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최저임금, 근로계약서 등 근로기준법은 무시되기 일쑤다. 거기에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무시하는 사람들까지…. 우리의 노동환경을 살펴봤다. 열심히 일했는데 돈이 안 돼우리나라의 아르바이트 노동환경 가운데 특히 열악한 부분은 ‘최저임금’이다. 2014년 최저임금은 5,210원, 내년에는 올해보다 7.1% 인상된 5,580원이다. 그러나 2013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운데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호주(10.21달러)의 절반 수준(5.22달러)이다.국내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홍보담당자 박 씨(48)가 낸 해고 무효 소송에서 원고 승소했다. 광주지법 민사 13부(이종채 부장판사)는 ‘조교’ 신분이었지만 연구 등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기간제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박 씨도 계약상 조교일 뿐 실질적으로는 조교가 아니어서 2년을 초과해 일하면 무기 계약직으로 바뀌고, 계약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해고해서도 안 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에 본부는 “1심에서 변호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항소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제 7회 후광학술상(전남대학교민주평화인권학술상) 시상식이 지난 9일 14시 용지관 3층 광주은행홀에서 열렸다. 수상자 서울대 최정운 교수(정치외교)는 “5·18 연구는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며 “5·18을 연구한 뒤 지식인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큰 상을 받아 영광스럽다”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이 상을 받을 만큼 공헌했나 싶어 부끄럽다”고 밝혔다. 지병문 총장은 축사에서 “(최 교수가 쓴) 논문은 공수부대의 잔인한 폭력 아래서 겪는 시민들의 고뇌와 용기를 통해 ‘절대공동체’를 생생하게 복
고3 수능이 끝난 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시급은 5,000원. 2012년 최저임금이 4,320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시급은 센 편이었다. 그러나 근로계약서, 주휴수당 등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몰랐고, 노동문제나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맥도날드 사건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지난달 잘렸다. 맥도날드 측에서는 “같이 일하는 점원들이 노조활동을 불편해 한 것이지 회사의 입장이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 2014년 4월 16일, 그 끔찍한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200일이 넘었다.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상징이 돼버린 팽목항은 더욱 차가워질 것이다. 세월호 실종자 수중 수색은 종료됐고, 사고 수습과 가족지원을 위해 운영하던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해체됐다. 그곳은 이제 끝 아닌 끝이 남았다. 그러나 여기 ‘지난’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광주 YMCA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은 매일 밤 무박 2일로 2인 1조 팽목항 등대지기가 된다. 지금까지 참여한 봉사자는
엉망이다. 총(여)학생회의 정책공약집은 선거 5일 전인 20일에야 나왔고, 지난 2~3년간 공약을 짜깁기해 이름만 바꾼 뒤 공약이라고 내세우는 학생회 후보자부터 시작해 우리는 ‘공약이 없다’며 당당히 유세를 다니는 후보자도 있었다. 특히 정책공청회(공청회)를 준비하면서 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선관위)의 태도는 이번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을 키웠다. 정책공청회는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자리였다. 공청회가 예정돼 있던 전날에서야 총학생회 입후보자를 통해 날짜가 바뀐 사실을 들은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하필이면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먼데도 불구하고 부러 시장을 돌아 집으로 갔다. 시장에 가면 예쁜 것들이 많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도 닭 한 마리가 통째로 튀겨지고 있기도 했다. 왁자한 시장을 구경하며 집을 가던 초등학생의 나는 즐거웠다. 오랜만에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기로 했다. 밥 먹고 영화보고 카페 가는 평소의 ‘놀이’가 지겨워졌기 때문이다.우리 대학 후문에서 160 버스를 타면 20분 정도 소요되는 양동시장. 노란 겉옷을 껴입은 고구마, 김말이 등의 튀김이 가장 먼저 눈길을 붙잡는다. 알록달록한 과일, 빨갛게 익은 고추
우리 대학과 부산대 학생들의 멋진 승부가 지난달 24일 부산대 경암체육관에서 펼쳐졌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농구 경기에 임한 학생들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진지했다. 진지하면서도 웃음이 넘쳤다. “마! 살살해(웃음)” 지난해 친선경기에서도 함께한 부산대 중앙동아리 농구팀과 우리 대학 체육교육과 농구팀은 서로가 친숙해보였다. 같은 시각 운동장에서는 축구가, 농구가 끝난 뒤에는 여학생 풋살 경기가 진행됐다. 우리 대학의 경우 총장배에서 우승한 팀들이 참여했다.우리 대학 친선경기 대표학생 김용준 씨(체육교육·10)는 “이기고 지고는 상
2·28 사건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2·28국가기념박물관을 방문했다. 그 곳에서 2·28국가기념박물관을 책임지고 있는 시-핑랴오 관장(Chie-ping Liao, 63)을 만나 피해자 명예회복, 박물관 역할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2·28 사건 후 대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49년부터 지속된 계엄령은 38년 후 해체됐고 1987년 대만정부는 2·28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했다. 박물관장은 “정부는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을 위한 2·28배상조례를 만들었다”며 “조례를 통해 설립된 2·28기금회는 약 1,300명의 피
우연은 상황을 만들었고 상황은 그의 삶을 파괴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대만으로 유학 온 프레드 친 씨(Fred Chin)는 유학생활에 잘 적응하고자 유학관련 기관을 자주 방문했던 것이 화근이 돼 계엄령 당시 12년 동안 수감됐다. 그는 “참기 힘든 고문을 받으며 3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지만 기적적으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사상교육을 받은 뒤 출소했지만 말레이시아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계엄령 당시 국제법에 따라야했기 때문이다. 프레드 친 씨는 “ID카드가 없어 구직을 할 수 없었기에 거지와 다름없는
1947년 그날 이후 대만의 상황은 어떨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2·28국립기념관, 징메이 국가인권박물관 등을 찾았다. 관련자들을 만나 2·28 사건(2·28)뿐 아니라 이후 백색테러 등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봤다.시작은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충돌이었다. 국가 전매 품목인 담배를 몰래 팔던 여인이 단속원에게 붙잡혀 개머리판으로 가격 당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항의하는 군중에게 발포했고 경찰이 쏜 총에 학생 한 명이 사망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2·28은 피해 양상에 따라 구분이 가능한데 1947년 2월
질린다. ‘좋은 게 좋다’는 말. 취재를 가면 간혹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기사 내기 전에 먼저 보내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 취재원들을 만나곤 한다. “전남대 이미지 깎아먹는 짓 그만 하라”며 당부 아닌 당부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사실만을 보도했을 때 그 사실을 비판 받는다면 그 일은 비판받을 만한 일이다. 신문 보도 때문에 ‘괜한 욕을 먹은 것’이 아니라, ‘이미지만 깎인 일’이 아니라 ‘사실’일 뿐이다.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문제가 제기됐다면 이 문제가 왜 제기 됐고, 타당한 문제 제기인지, 타당한 문제 제기라면 해결 방
신문사에 가니 기자가 “멋있다”며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우리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가 붙여 놓은 쪽지 아래 누군가 응원을 담은 쪽지를 붙여놓은 것을 찍은 사진이었다.학내에 성소수자 동아리가 활동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기에 놀라웠다. 성소수자 동아리라는 사실 외에는 어떤 동아리인지 알 수 없으나, 성소수자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현실은 각박하다. ‘동성애 합법화’라는 반대 여론에 차별금지법은 결국 지난해 무산됐고, 취재 차 만난 성소수자는 가족들에게 마저 학대 받으며